종교 피해 심각

종교 전쟁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마도러스 2014. 12. 2. 12:20


종교 전쟁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종교는 자연 발생적인 원시적인 종교가 있고, 깨달은 이가 삶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 종교가 있습니다. 자연 발생적인 종교는 기본 원리가 인과응보(因果應報)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하면 복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 그러니까 이것은 좋게 말하면 좋게 들리지만, 법률로 따지만 ‘이에는 이, 눈에는 눈’과 같은 얘기입니다. 나쁜 짓 하면 징벌을 당하는 겁니다.

 

힌두교(Hindu)에서 얘기하는 것도 결국 나쁜 짓 하면 나쁜 과보를 받고 좋은 일하면 좋은 과보를 받는다, 유대교(Judaea)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들으면 소돔과 고모라에서처럼 유황불로 지져버리고 소금 기둥으로 만들어버리고 이렇게 다 징벌을 합니다. 이것을 법으로 정한 것이 함무라비(Hammurabi) 법전의 논리예요. 이런 인과응보(因果應報)적 사고가 모든 종교에 공통적으로 내재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은 종교는 성격이 좀 다릅니다. 그런 인과응보(因果應報)적인 것이 아니에요. 즉, 예수님을 십자가게 못 박아 죽였으면, 그 살인자(殺人者)는 당연히 인과응보적으로는 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져야 하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했나요?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그랬습니다. 이것이 바로 용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예수님 이전의 구약의 하나님은 징벌의 하나님이라면, 예수님 이후의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크리스트교(Christianity)는 원시 종교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자기 종교를 안 믿으면 징벌을 한단 말입니다. 십자군 전쟁 같은 경우를 보면, 모두 다 보복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종교의 이름은 있지만, 실제로 그 종교를 창시한 성인과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불교(佛敎)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등학교에서 전교에서 1등 하는 아이는 서울대 의대를 가든 법대를 가든 충분히 합격하잖아요. 그런데, 그 아이의 어머니가 ‘우리 아이 서울대 넣어달라’고 하루에 천배씩 기도할까요? 안 할까요? 안 하겠지요.

 

그런데 우리 아이의 성적으로는 서울대 들어가기가 좀 어려운데도 서울대를 가고 싶으면 죽기 살기로 기도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만약 기도를 해서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들어갔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결국 실력이 안 되는 아이를 넣기 위해 실력 되는 아이 하나를 빼고 넣어줬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부처님이 하는 역할이 입시 브로커 같은 역할이잖아요.

 

하지만, 성인으로서의 하나님과 부처님은 이런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믿는 종교는 모두 이런 식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종교는 원시 종교입니다 종교의 이름이 어떻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종교 간의 갈등은 예수님과 부처님, 마호메트와는 관계가 없는 그냥 세속적인 이해의 충돌이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세속적인 이익을 종교의 이름으로 추구하는 것입니다. 종교가 특히 갈등이 심한 이유는 자기만이 옳다는 믿음이 강조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이 보통 ‘자기가 옳다!’ 하지만 틀릴 수가 있는데, 진리라는 이름으로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신앙이다 보니까 종교는 서로 협력하고 타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다종교 사회가 되면서 이 문제는 점점 풀리어 가지 않겠나 싶고, ‘종교 간의 전쟁은 과거의 문화 유산이다!’ 이렇게 보면 될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종교에 있는 것이 아니고, 즉 ‘원수를 사랑하라’는 사랑의 가르침은 기독교 안보다는 오히려 세속에 있습니다. 세속은 지금 법률적으로 모두 남녀평등을 실현하고, 인종 평등민족 평등을 실현하고 요즘은 성적 지향까지 다 개방하고 있잖아요.

 

신체 장애자도 차별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거꾸로 종교는 아직도 신체 장애가 되면 하나님의 벌(罰)이라든지 전생(前生)의 업보라든지 이렇게 설명하잖아요. 이것은 신체 장애가 무슨 죄라는 얘기 아닙니까? 여자로 태어난 것이 죄라든지, 성적 지향이 다른 것이 죄라든지, 그러니까 이것은 아직도 옛날의 원시적인 인간의 사고를 못 벗어난 현상입니다.

 

옛날에는 전쟁에서 이기면 적군(敵軍) 중에 부상당한 사람도 찾아내어 다 죽이고, 성(城)을 점령하면 어린애까지 다 죽였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적군(敵軍)이라 하더라도 공격력이 없는 부상자는 치료해주고, 포로는 보호해서 나중에 송환해주고, 전쟁에 상관없는 민간인은 다치게 하지 말자고 합니다.

 

이렇게 세속이 훨씬 더 원래의 예수님 가르침에 근접해 가고 있습니다. 반면 종교는 아직도 원시적인 신앙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종교 전쟁은 예수님과 부처님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냥 종교라는 이름의 문화적 충돌, 세속적인 이익 충돌 때문에 생기는 갈등입니다.

 

종교가 무엇 때문에 거대한 탑이 필요하고, 거대한 성전이 필요하겠습니까? 거대한 궁전과 성당들을 모두 누가 지은 것입니까? 황제가 지었잖아요. 기독교가 로마로부터 공인을 받으면서 황제가 바로 교회의 수장이 되었잖아요. 황제가 교회의 수장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세속화가 되었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종교 문제가 아니라 세속적인 문제입니다. 이 세속적인 문제를 갖고 자꾸 종교라고 봐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의 종교이기 때문에 현실의 종교의 공허함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예수님 가르침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중세에서는 (神)이 세상을 다 움직인다고 생각했잖아요. 천체의 움직임도 (神)이 한다고 했는데, 뉴턴(Newton)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발견되면서 신의 영역에서 벗어났죠. 모든 생명도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했는데,다윈(Darwin)의 ‘종의 기원’이 나오면서 창조할 필요가 없어졌잖아요.

 

인간의 선한 소리, 악한 소리를 (神)의 소리, 악마(惡魔)의 소리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것은 프로이트에 의해서 무의식의 세계라고 다 밝혀졌잖아요. 이렇게 엄청난 기성(旣成) 사회의 벽을 뚫고 새로운 세상으로 왔기 때문에 세속이 더 진리에 가깝고 진보적이 되었고, 종교가 더 기득권화되어 있고 어리석음에 빠져있습니다.

 

이런 것에 대해서 이제 우리는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종교 간의 전쟁이라 하지만, 그냥 세상의 이념 전쟁, 즉 세속적 이익 다툼의 한 수단으로 종교가 이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종교 자체가 세속적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질문한 친구는 명쾌한 답을 얻었다는 듯 기쁜 마음으로 활짝 웃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법륜 스님도 29일 동안 유럽 순회 강연을 하며 유럽 곳곳에 세워진 성당과 모스크를 많이 보게 되었는데, 종교란 무엇인지 느낀 바가 컸나 봅니다. 종교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성찰해보는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출처: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