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三國).고려

백제시대에도 공공 화장실이 있었다.

마도러스 2007. 9. 30. 20:09

백제시대에도 공공 화장실이 있었다.

 

1,400년 전의 백제인들은 육식보다는 주로 채식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재청 국립 부여문화재 연구소전북 익산시 왕궁리 유적(사적 제408호) 조사과정에서 대형화장실 3기를 찾아냈고, 화장실에서 기생충을 채취,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왕궁리 발굴 중간보고5』발간을 통해 보고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정화조 같은 기능을 갖춘 대형화장실은 국내 최초로 확인된 화장실’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대형 화장실과 관련된 수종 · 기생충 · 토양분석을 통해 화장실 목부재로 굴피 · 상수리 · 밤나무가 주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익산 왕궁리 유적은 백제 제30대 무왕(600~641)대에 조성된 궁성 유적으로 남북길이 490여m, 동서너비 240여m에 이르는 장방형 궁궐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삼국유사는 이곳을 한 때 무왕이 천도했던 곳으로 기록하고 있다.

지난 1989년부터 현재까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왕궁리 발굴조사를 맡아 화장실 유적을 비롯해 높이 16.8cm, 길이 31.5cm 크기의 휴대용 변기, 소문 · 연화문 수막새, 각종 인장기와, 유리구술, 금구슬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특히 향로 혹은 대형토기의 다리로 부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짐승 발모양의 토제수각과 화로인 부뚜막형 토기는 왕궁리유적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특이한 형태의 고급제품으로 토기 양상에 대한 이해는 물론 왕궁의 위상을 가늠하게 해주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된다.

 

 

한편, 최근조사에서 궁성 내부의 대지 조성 및 축조 · 공간 구획에 대한 자료가 확인되었고, 와적기단 건물지 · 전각건물로 추정되는 대형건물지 · 백제의 자연친화적인 조경기술을 엿볼 수 있는 정원 등 새로운 궁성관련시설이 발견됨으로써 백제 왕궁의 실체가 조금씩 베일을 벗고 있다.

그동안 4차례에 걸쳐 중간발굴조사 보고서를 발간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왕궁리 기생충 분석결과와 성벽 축조시기에 대한 연구결과 등을 담은 ‘왕궁리 발굴 중간보고 5’ 를 출간했다.

 

스크랩: http://cafe.daum.net/do92, dosu8888@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