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스토리

■ 여수 돌산 향일암 스님과 여인의 러브 스토리

마도러스 2022. 8. 17. 21:43

 

■ 여수 돌산 향일암 스님과 여인의 러브 스토리

전남 여수시에서 1시간쯤 가면, 돌산도(突山島)라는 섬이 나온다. 이 섬의 끝자락, 금오산 중턱 바위 절벽에 신라시대 때에 원효 대사가 창건하고 수도했던 향일암(向日庵)이 있다. 울창한 낙락장송의 솔바람 소리가 잔잔하다. 온갖 기묘한 모양의 바위가 있고, 남해 바다의 장쾌한 파도가 말 그대로 기막힌 절경이다. 어느 날, 키가 훤칠한 미남 스님 한분이 전남 순천 송광사(松廣寺)로부터 향일암(向日庵)으로 왔다. 27살이었고, 법명은 지현이었다. 스님은 절 주변을 알뜰하게 손질한 뒤, 백팔염주(百八念珠)를 걸치고, 사바(娑婆) 세계 번뇌를 실어 깊은 사념의 경지를 거닐고 있었다. 그동안 폐사처럼 버려져 있던 향일암에는 이로부터 여신도들이 몰려 들었다. 낭랑한 목소리에 인물도 좋았다. 향일암 경치마저 절경이어서 그는 곧 바로 향일암의 인기 스님이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향일암에서 1km 떨어진 해변의 율촌 마을에 양장 차림의 예쁜 처녀가 찾아들었다. 폐결핵으로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요양을 하려고 광주에서 그녀의 이모가 사는 율촌에 왔다는 그녀는 발그레한 볼이 요정처럼 예쁜 미인이었다. 동백과 산죽 그리고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지는 꽃잎이 온 섬을 뒤덮고, 바위틈에 도사린 석란(石蘭)의 향기는 십리 안팎을 유혹하던 때였다. 그녀의 질병은 이런 절묘한 풍경 때문이었는지 눈에 띄게 회복되었고, 차츰 힘이 생겨서 돌산도 금오산으로 산책 코스를 넓혀갔다. 바로 그 때, 그녀의 눈에 뛴 남성이 바로 지현 스님이었다. 그녀는 부처님 앞에 정좌하여 청아한 목소리로 독경하는 근엄한 그의 모습을 취한 듯이 정신없이 응시했다. 이로부터 그녀는 2개월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금오산 중턱의 향일암을 찾았다. 그녀의 시선은 날이 갈수록 뜨거워졌다. 그리고, 지현 스님의 얼굴을 못 보면, 잠이 들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스님은 신목(神木) 장승처럼 눈길 한번 주는 법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서 가을이 되었다. 사무친 가슴 속의 사연이 맺히고 맺혀서 이번에는 폐결핵이 아닌 상사병(相思病)에 몸부림 하다가 처녀는 농약을 마셔 버렸다. 위급한 그녀를 두고 이모는 조카의 애절한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지현 스님에게 달려가서 그 애를 구해 달라고 애원했다. 스님은 그 요청을 거부했다. 그리고, “나의 손길보다는 당장 해독할 수 있도록 녹두물이나 갈아 먹이시오.” 라고 했다. 이모는 되돌아와서 곧바로 녹두를 갈아 먹였다. 병원 의사가 없는 갯마을에서 꼼짝없이 죽어야 했던 그녀는 신통하게도 살아났다.

어느 날 새벽 4, 지현 스님은 화엄경을 독경하며 새벽의 경내를 산책하고 있었다. 그 때, 느닷없이 뒷산에서 비통한 여인의 통곡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스님은 뒷산으로 달려갔다. 그녀가 흔들 바위에 맨발로 서서 남해 바다를 향해 투신하려는 바로 그 찰나였다. 혼비백산(魂飛魄散)했다. 지현 스님은 자기로 인해 원한을 품고 죽을 여자를 생각하니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아가씨 소원은 뭐요? 다 들어 주겠으니, 제발 뛰어 내리지만 마세요!” 라고 애원했다. 그녀의 소원이란 불을 보듯이 뻔한 것이었다. "스님과 함께 항상 있도록 해 주세요!" 라는 것이었다. 망설이고 더듬거릴 겨를이 없었다. “알겠으니, 제발 그곳에서 내려와 주세요!” 라고 간청했다. 그 소리를 듣자, 그녀는 바위 위에서 그만 실신하고 말았다. 스님은 곧 바로 그녀를 구출해 냈다. 암자에 눕혔고, 어느덧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스님의 품안에 안겨 몸부림치며 울었다. 난생 처음으로 싱싱한 여인의 체취와 풍만한 마찰감에 지현 스님도 얼이 빠져 버렸다. 그 순간, 막혀 있던 정열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마침내 10년 수도를 1년도 못 남기고 거센 폭포수 속의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이날 새벽부터 지현 스님의 낭랑한 독경 소리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로부터 6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 여름날! 대구시의 절에서 참회의 수도에 전념하던 스님은 어떤 모녀(母女)의 방문을 받았다. “이 애가 스님의 딸입니다!” 모녀(母女) 6살 귀여운 아기를 내보였다. 스님은 껄껄 크게 웃으며, “그렇습니다. 내 아이입니다.” 면서 즉시 승복을 벗고 딸을 가슴 가득히 안았다. 그리고, 그는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 스님 부부는 딸 하나에 아들 하나를 더 얻어 1 2녀를 두었다. 현재, 그들은 부산시 영도구 봉래동에서 미곡상을 경영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살고 있다. 그리고, 외부 기자들에게는 사진 찍기를 끝까지 거부했다고 한다. ‘사랑했음으로 행복했노라!’ 한 여인의 억센 사랑의 집념으로 10년 수도승의 마음을 움직였다. 금오산 향일암 뒷산 흔들 바위는 오늘도 그날처럼 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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