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양 접시 속에서 인간 장기 배양 성공
배양 접시 속에서 인간 장기 배양 성공
● 줄기 세포 분화해서 만든 인간 미니 장기
대전 생명공학연구원의 손미영 책임연구원(줄기세포 연구센터)은 2018년 08월 과학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오가노이드(organoid)를 발표했다. 줄기 세포를 배양하거나 재조합해서 만든 인간 장기가 바로 오가노이드(organoid)이다. 정식 이름은 장기 유사체이다. 세포 배양 접시에 담긴 지름 2-3㎜의 작은 세포 덩어리이다. 이토록 작은 것이 2만-3만 개 세포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단순한 세포 덩어리가 아니다. 길이 7m나 되는 인간 소장을 구성하는 주요한 세포 종류들이 2㎜가량의 세포 덩어리에 구현됐고, 거기엔 또 속 빈 공간과 융모도 있다. 영양분을 흡수하는 세포, 호르몬을 분비하는 세포, 장내 미생물에 서식 환경을 마련해주는 세포, 해로운 외부 물질을 공격하는 세포, 손상된 세포를 갱신해주는 성체 줄기 세포들은 이 세포 뭉치가 인간 소장을 번듯하게 흉내 내고 있음을 말해준다.
국내 연구진이 인간의 줄기 세포로부터 새로운 3차원 구조를 갖는 장기 유사체 제작에 성공했고, 줄기 세포로부터 분화된 세포들이 갖는 미성숙 문제를 해결한 최초의 성과이다. 인체 유사 모델 개발 기술을 한 단계 더 높였다. 체외 성숙화 기술을 통해서 성인의 장기가 가지고 있는 생리학적 특성 및 기능성을 모두 가진 성숙한 인공 소장 모델을 개발했다. 인간의 소장. 대장의 모사 모델로서 정확한 약물 반응이나 질환을 재현하려면 인체와 유사한 장관 오가노이드(organoid)가 필요하다.
연구진은 인체 장내 환경을 모사하기 위해 면역 세포를 공동 배양해서 소장 오가노이드(organoid)의 성숙화 가능성을 밝혔다. 성숙한 소장에서 보이는 특이한 지표 유전자와 단백질 발현 패턴뿐만 아니라 소장의 기능성 재현 가능함을 확인했다. 이번 체외 성숙 고기능성 장관(腸管) 오가노이드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능성 인간 장관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인간의 줄기 세포로 만든 오가노이드(organoid) 체외 성숙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기술의 실효성까지 입증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장 질환 치료를 위한 신약 개발에 기여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최근 부상하고 있는 장내 미생물 연구나 실험 동물 사용에 대한 상호 보완적 모델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생명공학연구원의 손미영 책임연구원은 “앞으로 인간 장 질환을 치료할 신약 물질의 독성이나 효능을 검사하거나 장내 미생물이 실제 장 환경에서 어떻게 사는지를 연구하는 데 요긴하게 쓰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 배양 접시 안의 인체 질환 모형
2009년 네덜란드 후브레히트 연구소의 한스 클레버스 박사는 생쥐의 직장에서 얻은 줄기세포를 배양해 아주 작은 내장을 만들어냈는데 여기에 ‘오가노이드’(organoid)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후, 역분화 줄기세포(iPSC), 배아 줄기세포, 성체 줄기세포의 분화를 조절해서 간. 장. 뇌. 심장 등 여러 인체 기관을 모사하는 오가노이드들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다. 오가노이드 연구 개발이 활발한 것은 그동안 발전해온 줄기 세포 분화 기술 덕분이다. 역분화 줄기세포나 배아 줄기세포는 갖가지 장기의 세포들로 분화하는 능력을 갖춘 세포인데, 특정한 조건에서 특정한 때에 특정한 분화 조절 인자를 넣어주면, 줄기 세포는 다른 분화의 길을 걸으며, 뇌. 장. 간 같은 장기로 성장한다. 오가노이드(organoid)는 인체 질환이 어떻게 발병하는지를 보여주는 실험 모형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연구진은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망막이 만들어질 때 갑상선 호르몬의 작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 파랑. 빨강. 초록의 색각 세포들이 정상으로 발달하지 못한다는 것을 배양 접시 안의 오가노이드를 통해 보여주었다. 연구진은 “엄마 뱃속에서 일어나는 태아의 눈 발달 과정을 배양 접시 안에서 들여다보는 셈”이라고 말했다.
미국 신시내티어린이병원 연구진은 줄기세포의 분화를 조절해 길이 0.8㎜가량의 식도 오가노이드를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특정 생화학 분자(Wnt)가 작용하면, 식도가 위에 연결되지 못하는 ‘식도 폐쇄’를 일으킬 수 있음을 오가노이드 수준에서 재확인했다며, 그 결과를 <셀 스템셀>에 보고했다.
생명공학연구원 정초록 책임연구원(줄기세포연구센터)은 “이미 있는 암 세포로 만든 암 오가노이드와는 별개로, 정상 오가노이드에서 암이 발병하는 과정을 구현한다면 암 질환 연구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암 환자에서 얻은 암 세포를 이용해 오가노이드를 만들어 암 질환 연구와 약물 효능 검사에 이용한다. 암 발병 과정을 배양 접시 안에서 직접 보려는 시도도 중요한 도전 과제가 되고 있다.
● 점점 더 비슷한 장기 유사체 만들기
아무래도 오가노이드 분야에서 큰 관심은 실제 장기와 얼마나 더 비슷한 오가노이드를 만드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실제 인간 장기와 비슷할수록 약물 독성이나 효능을 시험할 때 실제 인체에 끼칠 영향을 더욱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도전 과제 중의 하나가 더 ‘성숙한’ 오가노이드 만들기이다. 생명공학연구원 정초록 책임연구원은 “지금까지 구현된 오가노이드의 대부분은 태아에서 볼 수 있는 미성숙한 장기의 수준”이라며, “충분히 발달해 성숙한 유사 장기를 만들려는 연구가 경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출생 이후에 신생아의 장기들은 저마다 다른 환경에 처하면서 태아 때와 다른 성숙한 상태로 점차 바뀌는데, 이런 성숙한 오가노이드를 배양 접시 안에서 만들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2018년 08월 생명공학연구원 연구진이 만든 소장 오가노이드는 새로운 성숙화 기법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이 이용한 성숙화의 비법은 면역 세포에서 분비되는 면역 물질이었다. 연구를 이끈 생명공학연구원의 손미영 책임연구원은 “출생 이후에 신생아의 소장에는 장내 미생물이 많아지면서 갖가지 면역 반응이 일어나고, 이런 독특한 환경이 태아 시절의 소장과 다른 성숙한 소장을 만들어준다는 데 착안해서 면역 물질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오가노이드는 실제 소장에 더 가까운 특성을 보여주었다.
● 손상된 장기를 치료하는 재생 의료
여러 오가노이드(organoid)를 연결해 약물이 인체의 여러 장기를 거치면서 나타내는 독성이나 효능을 시험할 수 있는 복합 장치를 만들려는 시도도 있다. ‘인공실험체’ 개발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생명공학연구원 정초록 책임연구원은 “약물을 흡수하는 소장 오가노이드를 거치고, 약물을 분해하는 간 오가노이드를 거친 다음에 독성 반응을 보여주는 콩팥 오가나이드를 연결해, 신약 후보 물질이 인체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을 평가하는 인체 모사 장치를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실험 장치는 동물 실험을 줄여주고 보완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오가노이드(organoid)는 당장에는 신약 개발, 약물 시험, 생물학 실험 등에 활용되지만, 미래에는 손상된 장기를 치료하는 재생 의료에도 쓰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한 생명윤리 논의도 늘고 있다. 세포 수준에서 이뤄지던 줄기 세포의 생명 윤리 논의와 인체 장기 수준의 논의는 아주 다른 문제이다. 법률 체계를 정비하거나 새롭게 정의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앞으로 ‘오가노이드 은행’이 등장하고, 기술이 상업화되면, 줄기 세포와 오가노이드의 수집. 보관. 분양 과정에서 기증자. 사용자. 보관자의 이해 상충을 둘러싸고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한 실험실에서 만들어지는 뇌 유사 물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의 철학적. 윤리적 문제도 과학자들과 소통하며 다뤄야 할 중요한 이슈이다. 최근, 미국에선 미국립보건원(NIH)의 지원으로 뇌 오가노이드에 관한 생명 윤리 연구 그룹(브레인스톰 프로젝트, 책임자 윤인수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 교수)이 정식 출범했다.